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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 도서 주제철학
  • 제 목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 저 자에른스트 윙거, 발터 벤야민 지음
  • 출판사글항아리
  • 출판일2020. 01. 29
  • ISBN9788967357443
  • 이용 대상일반
  • 가 격2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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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른스트 윙거의 삶

189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난 윙거는 약국 운영과 광산업으로 일찍이 많은 돈을 모은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민적 안정감과 지루한 학교 교육에 신물을 느끼고 무료한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윙거는 그 수단으로 독서를 선택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같은 그리스 영웅 신화와 낭만주의적 기행문들은 반복적 일상 속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모험의 장이었으며, 영웅적 세계에 대한 내면의 동경을 일깨워줬다.
결국 그는 18세가 되던 1913년에 아버지 몰래 집을 나와 프랑스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입대한다. 하지만 그의 일탈은 아버지가 미성년자인 아들을 되돌려달라며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이내 끝을 맺는다. 그러나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윙거는 곧장 자원입대함으로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자신의 모험을 계속한다.
‘강철 폭풍우’처럼 포탄과 기관총탄이 쏟아지고, 수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이런 모든 참상에도 불구하고 윙거에게 세계대전은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해방과 모험의 공간이었다. 세계를 변화시킬 이 전쟁의 가장 훌륭한 경험자이자 관찰자 그리고 기록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자원병으로 입대해 중상을 10차례 이상 입으면서도 기적처럼 회복해 전장을 누볐으며, 1916년에는 소위로 임관해 소수정예의 정찰부대를 지휘하는 보병장교로 복무한다. 그리고 독일제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의 훈장인 푸르 메리트를 수여받음으로써 전쟁 영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강렬한 전쟁 체험은 윙거의 초기 대표작인 『강철 폭풍 속에서』와 같은 전쟁소설과 아포리즘적 에세이 『모험적인 영혼』 등의 주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초기 작품들에는 윙거가 전장에서 받은 엄청난 신체적·육체적 고통과 기술화된 현대 물량전의 체험, 전쟁의 광풍 속에서도 영웅적으로 살아남은 청년 장교의 우월감, 패배한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에 역사철학적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노력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나타난다.

바이마르 공화국: 청년 장교에서 극우 활동가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윙거는 새롭게 출범한 공화국 군대 장교단의 일원으로 잔류한다. 독일 육군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7만5000여 명으로 감축되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직업군인이 군복을 벗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전장에서 그가 세운 공적이 육군 내에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핵심적인 부서인 군사전술 연구부서에 근무하면서 기계화된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기계화 전술의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기술을 세계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에세이 『노동자』를 구상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 그러나 윙거는 반反민주주의자로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군인의 충성 맹세를 내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에 공화국 장교로서의 생활은 그리 길게 지속될 수 없었다. 1923년 예비역 중위로 전역한 그는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에 접어든다.

윙거와 나치즘

윙거와 나치의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윙거와 나치의 친연성을 1920년대 중후반에 주로 작성된 정치논설과 1930년 즈음에 발표된 「총동원」 『노동자』 「고통에 관하여」와 같은 철학 에세이에 나타난 전체주의적 사회에 대한 옹호에서 확인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대리석 절벽 위에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간접적인 나치 체제 비판과 일관된 나치 정권과의 거리 두기를 윙거와 나치 간의 관계를 부정하는 전거로 내세운다. 사실 이 두 견해 모두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국가사회주의(나치) 운동과 윙거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 초중반에 시작된 양자 간의 관계는 우선 1920년대 중반까지 호의적이었다가 1920년대 말 즈음 악화되어 1930년대에 이르면 사실상 단절된다. 나치당이 폭력적 혁명 노선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의회를 통한 집권이라는 소위 ‘합법 노선’을 선택한 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면서 나치당과 윙거는 급속히 멀어지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적인 혁명주의자 윙거에게 나치당의 대중적 합법노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불어 지식인의 직접적 정치 참여가 폭넓게 확산되어 있던 프랑스와 달리, 지식인의 정치 참여가 ‘정신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독일의 관념론적 지식인 전통의 자장 아래 윙거가 놓여 있었다는 점 또한 그가 나치당과 거리 두기에 나선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치와 윙거의 관계는 마침내 그가 1930년대 말 『대리석 절벽 위에서』를 발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른다. 가상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 속 ‘산림감독원장’의 무자비한 폭력과 살육은 이미 당대에도 나치 정권에 대한 유비로 해석되었으며, 그를 반反나치 진영의 인물로 인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나치의 조야함과 무차별적 폭력성에 대한 그의 비판과 비판적 자기성찰은 전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때문에 윙거는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카를 슈미트,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보수 지식인들과 달리,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후의 활동에 있어서 거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전후 독일에서의 윙거

작가 윙거에 대한 서독 사회의 평가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보수적이고 반공주의적 성향이 짙었던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 시절에 윙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게 활발한 출판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68학생운동이 일어나면서, 전체주의 국가의 도래를 예언한 『노동자』의 작가 윙거는 ‘나치즘의 선구자’로서 십자포화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윙거는 이미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계속해나간다.
윙거가 서독 문화계 주류로 ‘컴백’한 것은 1980년대 초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보수화의 바람과 적잖은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1984년 프랑스 베르?에서 개최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이뤄졌던 윙거의 기념연설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독일 총리 헬무트 콜과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자리한 이 행사에서 윙거는 독일과 프랑스간의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했고, 이를 통해 그는 1960~1970년대에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판적인 평가를 얼마간 해소할 수 있었다. 1982년에 윙거에게 수여된 괴테 상 또한 윙거 문학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라는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1995년 윙거는 빌플링겐의 시골집에서 마침내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이 자리에는 독일 연방대통령 로만 헤어초크, 독일 연방총리 헬무트 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 에르빈 토이펠 등이 참석했는데, 모두 보수당인 기민당 소속의 정치인들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무수한 총탄과 포탄의 파편에도 굴하지 않은 전쟁 영웅 윙거 또한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103번째 생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98년 2월 17일, ‘격동의 독일 한 세기’를 논란 속에서 살아온 노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윙거의 시대 진단

니체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윙거는 19세기를 지배했던 시민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그 최후를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안전’과 ‘안락함’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최후의 인간”인 시민계급은 ‘고통’과 ‘죽음’과 같은 ‘근원적인 요소’들과의 관계를 상실했고, 이 때문에 몰락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선출되어 시민적인 대화와 토론의 가치 위에 구성된 정치 시스템인 ‘의회민주주의’ 또한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윙거는 ‘최후의 인간’인 시민을 대체할 ‘초인적’ 주체로 그가 ‘유형’ 혹은 새로운 ‘인종’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노동자’를 제시한다. 여기서 윙거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인종이란 물론 나치 이데올로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생학적 의미의 인종이 아니다. 윙거에게 새로운 인종이란 ‘인간학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기술의 시대에 적합하게 변화되어 기존의 시민적 인간과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인종인 것이다. 둘째로 기술의 시대에 적합하도록 발전된 새로운 인종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는 기존의 시민이 지배하던 세계와는 그 조직과 성격에 있어 상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윙거의 시대 진단이 갖는 핵심이다. 그는 다가올 노동자 시대의 조직을 세계대전 군대의 일사불란한 지휘와 복종의 시스템에서 발견한다. 세계의 지배 수단으로서의 기술(무기)을 다루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주권적 결단을 통해 조직을 지휘하는 지휘관과 그의 명령을 목숨을 바쳐 수행하는 군인 간의 ‘유기체적’ 관계야말로 윙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책임성 있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다.

「고통에 관하여」

윙거는 「고통에 관하여」에서 기술화된 현대사회의 특성을 무엇보다 ‘고통’이라는 핵심어를 통해 포착하고, 기술과 고통이 맺는 관계를 해명하고자 시도한다. 게오르크 지멜이 일찍이 「대도시와 정신적 삶」(1908)에서 현대 대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의 특징을 엄청난 청각적 소음과 시각적 혼란 등의 ‘고통’에 대한 ‘둔감성’으로 보았던 것처럼, 에른스트 윙거의 문제의식 또한 기술화와 합리화가 진척될수록 이에 상응해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점증하는 고통과 이에 대응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와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기존의 독일 보수주의자들이 기술문명을 ‘타락’ ‘평균화’ 등의 이유로 적대시하고, 기술문명이 불러일으키는 증대되는 고통의 문제를 자연으로 도피함으로써 해결하려는 기술 적대적 혹은 기술 회피적인 성향을 보였다면, 윙거는 과학기술에 의한 세계의 ‘탈마법화’(베버)나 ‘아우라의 소멸’(벤야민)과 같은 기술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영웅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윙거는 고통에 대한 해법으로 삶의 근원적인 요소인 이 “고통을 포섭하고 삶이 고통과 언제든 조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의 계획”을 세울 것을 제시하는데,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이 계획은 현대적 기술의 도움을 통해 최적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과 기술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해 현대적 고통을 영웅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현대의 군사, 문화, 스포츠 영역의 현상들을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요컨대 인간은 기계와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활동을 ‘측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발전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달성된 인간 육체의 “경화” 및 “도금화”를 통해 기술문명이 끊임없이 부과하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

철학적 에세이 『노동자』는 「총동원」이 나온 1930년과 「고통에 관하여」가 출간된 1934년 사이인 1932년에 출간되었으며, 이 글들은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총동원」이 기술력의 발전을 최대한 총동원하는 병영적 전체주의 국가 체계의 필연성을 세계대전의 경험에 근거해 제시했다면, 『노동자』는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서 “노동자의 형상”과 그 형상의 정치적 구현체로서 전체주의 국가 간의 관계를 ‘유기체적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역사철학적·자연적 필연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윙거는 당시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에서 진행중이던 전체주의 국가화, 즉 국가 중심의 경제 개발계획 추진, 입법부와 행정부가 결합된 정치시스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총동원 체제 등에 주목하면서 국가에 의해 기술 발전의 가능성이 총동원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 체제를 미래의 국가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시민사회적 질서의 종말

『노동자』 1부에서 윙거는 시민계급이 19세기를 통해 구축한 체제, 즉 경제적으로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 의회민주주의 체제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음을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윙거는 시민적 세계의 몰락의 전조를 무엇보다 “노동자”의 등장에서 확인한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는 시민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지만 세계대전의 포화를 통해 새롭게 단조되어 낡은 세계를 타파할 동력을 지닌 새로운 “인종”이다. 여기서 윙거가 말하는 “노동자”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노동자와 명백히 구별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노동자가 현대의 분화된 생산관계 속에서 파편화된 전문적 노동을 수행하는 ‘경제적 존재’인 반면에, 윙거의 노동자는 “총체성” 안에서 유기체적인 노동을 영웅적으로 수행하며 자신의 권력 의지를 표출하는 정치경제적 존재다. 이는 이해타산적·시민적 경제 영역보다 귄력추구적·영웅적 정치 영역이 우선한다는 윙거의 정치철학적 입장의 반영으로 이러한 그의 사유의 바탕에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니체의 철학이 기반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윙거는 개별자와 전체가 맺고 있는 ‘유기체적 관계’, 즉 개별자의 다양성과 전체의 통일성의 관계를 설명한다. 요컨대 각각의 개별자로서의 노동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다양성(개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다양성은 형상의 총체성 내부에 포섭된 다양성이며, 개별자의 다양성은 유형의 총체성 내에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2부의 초반부에서는 1부에서 설명되었던 노동자의 특징을 더욱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부각하는 동시에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노동자의 노동과 세계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기술”의 특징이 논의된다. 이어서 윙거는 19세기적 현상인 대중과 개인 모두가 몰락하고 노동자 유형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을 통해 관계를 맺는 19세기적 시민적 개인들은 근원적 권력(힘)과의 관계를 잃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민들의 모임인 대중 또한 소외되었고 근원적 권력과의 연관관계가 부재하기 때문에 각각 노동자 “유형”과 노동자의 “유기체적 구조”에 의해 대체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관성

윙거의 『노동자』는 모든 총체성과 세계의 중심이 파괴된 20세기에서 기술력의 발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모던의 예외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사회체계이론을 구축하고자 한 그의 노력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윙거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괴테적인 총체적·유기체적 사유와 접목시킨다. 이미 책의 제목 “노동자Arbeiter”가 명시적으로 드러내주듯이 윙거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자 개념뿐만 아니라 생산수단·경제체제 등의 단어도 전용하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철학 또한 수용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윙거에게서 새로운 사회 건설의 필연적인 핵심 주체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윙거는 경제체제에 있어서도 개인의 사유재산을 최소화하고 모든 기반시설을 국유화하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책을 지배하고 있는 윙거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윙거적 변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윙거는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를 변주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혼란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생산수단(기술)의 발전에 종결점을 부여함으로써 이 모든 기술과 역사의 발전을 무한으로 나아가는 수평선이 아닌 특수한 꼭지점으로 수렴하는 합목적적이고 유기체적인 발전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하며, 이는 기술력의 발전을 긍정하면서도 세계의 중심과 총체적 조망을 잃지 않으려는 전통적이고 보수적 사고가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윙거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이론 간의 차이는 그가 의회제도, 인권, 개인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19세기 계몽과 민주주의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동자』에 대한 비판

『노동자』는 책 전체에 깔려 있는 전체주의, 파시즘적 이데올로기와 반윤리적, 엘리트주의적 사유로 인해 출간 이래 비판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알프레트 베버는 『노동자』의 문제적 요소를 크게 네 지점에서 지적하는데, “전쟁에 대한 책임감 없는 태도”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 “파렴치한 자유에 대한 증오심” “악마적 충동의 드러남”(즉 “고문에 대한 욕구”) 등이 그것이다.
『노동자』에서 윙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인명 피해와 전쟁범죄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를 취할 뿐 아니라, 이를 열광적으로 긍정하고 전쟁을 새로운 세계 창조를 위한 ‘창조적 파괴’의 계기로 파악하는 ‘탈도덕적’인 입장을 취한다. 또한 베버는 윙거의 시대 진단 및 역사철학적 미래 전망의 자의성을 지적한다. 윙거는 제1차 세계대전에 기존의 시민적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한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정당성을 자의적으로 부여할 뿐만 아니라, 기술화된 세계에서 사회의 변화 과정을 임의적으로 ‘총체적 노동 성격’이 구현되는 노동자 세계로의 발전과정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인 군사주의에 기반한 『노동자』에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또한 분명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 책에는 시민적 자유에 대한 깊은 증오감이 표현되며, 자유에 기반한 관계에 대한 대안으로 책임에 기반한 ‘구속Bindung’ 관계가 제시된다.
아울러 베버가 지적한 “고문에 대한 욕구” 또한 텍스트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술 발전에 의한 ‘고통’의 발생과 기술을 통한 고통의 극복 가능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사회학적 분석은 주목할 만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통에 관하여」에서도 보여주었듯 이 고통을 절대화, 이상화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비도덕적이고 잔인한 태도와 고통을 즐기는 태도가 윙거에게서 미학적인 영역, 즉 ‘경악의 미학’으로 고양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윙거의 태도는 전체주의적 폭력에 대한 긍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앞서 제기된 윙거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벤야민의 이 비평문은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에서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을 윙거의 초기 에세이와 함께 배치한 이유다. 이 비평에서 벤야민은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윙거와 그 친구들의 사유를 비판한다. 첫째는 ‘전쟁에 대한 미화’ 및 ‘참전군인의 영웅화’, 둘째는 ‘기술의 전쟁적인 사용’에 대한 열광, 셋째는 전쟁의 신화화와 신격화 문제다.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와 경험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물량전의 참혹한 전쟁 양상과 ‘가스전’으로 요약되는 전쟁의 반인륜적 모습으로부터는 등을 돌린 채, 전사의 영웅성과 전쟁의 정당성만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벤야민은 윙거와 그의 친구들이 세계대전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희생으로 평가하면서 수많은 이의 죽음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벤야민은 전쟁과 기술의 사용 문제에 집중한다. 벤야민은 전쟁 기술에 대한 이들의 열광은 기실 ‘몰락의 숭배’와 다름없으며, 그들이 갈망하는 ‘다가올 전쟁’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기술의 노예 반란’에 불과할 것이라고 일갈한다.
마지막으로 벤야민은 전쟁을 신격화하는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뿌리 깊은 신비주의’적 태도를 비판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들은 “항상 가장 먼저 그리고 항상 가장 격렬하게 사리분별에 저항”하는 비이성적, 신비주의적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전쟁을 영원하고 근원적인 자연 법칙의 영역으로까지 고양시키려 한다. 따라서 벤야민은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저술이 전쟁을 “기술 속에서 신비주의적으로 그리고 무매개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에 불과하며, 전쟁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신비주의적 긍정은 필연적으로 논증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윙거와 그의 친구들이 ‘근원 체험’으로서 신비화하는 전쟁은 기실 ‘세계 죽음’의 종말론적 전망과 다름없으며, 신비로운 어둠의 그림자 속에 은폐된 현실은 ‘언어와 오성’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요컨대 벤야민은 세계의 ‘재마법화’ 전략을 추구하는 윙거에 대해 언어를 통한 ‘탈마법화’로 맞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벤야민의 언어철학적 사유와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화’라는 그의 탈신화화 전략은 여기서 결합되어 전쟁과 전쟁 체험을 신화화·신격화하는 윙거와 그의 친구들의 사유에 대한 해독제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노동자』는 윙거의 초기 사상의 집결체이자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독일 ‘보수혁명파’의 사유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텍스트다. 또한 『노동자』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근대 기술에 대한 사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의 분량이 방대한 관계로 완역에는 부담이 따랐다. 대안으로 『노동자』의 내용 가운데 「고통에 관하여」와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거나 윙거 사유의 핵심이 드러나는 부분 그리고 윙거와 벤야민 간 사유의 연관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들을 중점적으로 번역했다.

목차

노동자: 지배와 형상
초판본 서문 | 제1부 | 제2부 | 개요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옮긴이 해제_ 에른스트 윙거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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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독일 현대 문학사에서 에른스트 윙거Ernst J?nger(1895~1998)만큼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치 이론의 선구자’라는 평가에서 현대사회와 기술의 문제를 다룬 ‘탁월한 철학자이자 시대 진단가’라는 평가까지, 에른스트 윙거를 수식하는 표현들은 이렇듯 극단을 이룬다. 이 책은 “나치즘의 헌법” “파시즘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평가를 받는 『노동자: 지배와 형상』(1932)과 「고통에 관하여」(1934)를 국내 초역했다. 아울러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발터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을 함께 수록했다. 이로써 “전체주의의 역사철학서”로 악명만 높았던 윙거 초기 사상의 실체를 국내 독자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는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서 “노동자의 형상Gestalt des Arbeiters”과 그 형상의 정치적 구현체로서 전체주의 국가 간의 관계를 ‘유기체적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역사철학적·자연적 필연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고통에 관하여」는 하나의 독립적인 글이지만 「총동원」(1930)과 함께 에른스트 윙거의 초기 주저인 『노동자』에 대한 보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노동자』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나갈 주체인 ‘새로운 인종’, 즉 ‘노동자’와 이 노동자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미래 전망을 제시한다면, 「총동원」과 「고통에 관하여」는 각각 노동자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방법론’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 및 그 고통의 정당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래에서는 에른스트 윙거의 삶과 작품 활동에 대해 소개한 뒤 이어서 번역 텍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1895년 독일 남부 하이델베르크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영웅들의 전쟁과 모험을 동경했던 윙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병으로 입대했다.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전쟁의 경험은 소설『 강철 폭풍 속에서』(1920)에 잘 반영되어 있다. 전후에 극우 성향의 저술가로 활동했으며 나치의 집권 이후에는 정치적으로 은둔하며 나치 정권을 비유적으로 비판한 소설 『대리석 절벽 위에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윙거는『헬리오폴리스』(1949),『유리벌』(1957),『오이메스빌』(1977)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계속했으며, 1982년에는 괴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세기 동안 제1·2차 세계대전과 분단 그리고 재통일이라는 독일의 역사적 질곡을 몸소 체험한 노 작가는 1998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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