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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

역주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

  • 도서 주제문학
  • 제 목역주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
  • 저 자이사주당, 유희
  • 출판사모시는사람들
  • 출판일2023. 05. 12
  • ISBN9791166291647
  • 이용 대상일반
  • 가 격2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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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 최고 여성 유학자 사주당이씨가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서!
어머니가 짓고, 아들이 언해하고, 딸들이 발문을 쓰고, 유학자들이 서, 발을 쓰다!!
종합형 단행본이자, 태교의 문화사! 21세기 4차 산업시대, 인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케 하다!!

1. 이사주당과 태교신기, 유희
이사주당은 1739년(영조 15)에 이창식의 2남 5녀 중 넷째 딸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부모, 조상이 벼슬하지 못한 가문 출신으로, 늦은 나이인 25세 때(1763년, 癸未) 진주인(晉州人) 유한규(柳漢奎, 1718~1783)에게 시집을 갔다. 10년 뒤인 1773년(35세)에야 아들 희(僖, 초명은 儆)를 낳았는데, 이후로 세 딸을 더 두었다.
〈胎敎新記(태교신기)〉는 사주당 이씨가 유희를 낳기 전인 1772년경에 지었는데, 여기에 남편인 유한규가 ‘교자집요’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다.
그 후 20년 동안 이 책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셋째 딸의 상자 속에서 이 책이 발견되어, 62세인 1800년에 〈胎敎新記(태교신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완성하였다. 그의 아들 유희가 여기에 주석과 음의, 언해를 더하여 자신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인 1801년 3월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胎敎新記諺解〉). 그로부터 9년 뒤인 1810년(사주당 72세)에 큰딸과 작은딸의 발문과 함께 〈부설(附說)〉 등 후기와 언해를 덧붙여 하루 만에 묶어서 만든 것이 유희의 후손 가에서 오래도록 세전되어 왔다.
이사주당은 이후 80세가 넘으면서 고질병으로 3년 남짓 고생하다 1821년 9월 22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태교신기의 ‘실질적인 주인공’(태교로 태어난)이라고 할 이사주당의 아들 유희는 20대 중반에 당대의 저명한 학자였던 정동유(1744~1808)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그는 사주당의 ‘시험’에 통과하여 유희의 스승이 되었다. 사주당보다 다섯 살 아래인 정동유는 특히 양명학(陽明學)과 상수학(相數學)에 밝았고, 훈민정음학이라 할 수 있는 당대의 언어학에도 밝았다. 이사주당의 태교와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 유희는 훗날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어 언어학 연구서라 할 수 있는 『諺文誌(언문지)』(1824)를 저술하였다.

2. 태교신기의 저술, 전승 과정
(1) 이사주당이 30대인 1770년대 초에 유희를 임신하였을 무렵 처음 정리한 ‘태교와 육아’에 대한 글에 남편 유한규가 ‘교자집요’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다.
(2) 그 후 잊어 버렸던 것을 20여 년 만에 우연히 셋째 딸의 서랍 속에서 다시 찾아서, 62세였던 1800년에 ‘胎敎(태교)’ 부분만을 다시 정리하여 ‘新記(신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3) 이 책을 유희가 자신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인 1801년 3월 27일에, 〈태교신기장구대전〉에 음의와 주석을 더하고 이를 언해한 〈태교신기장구언해〉와 발문(跋文)을 덧붙여 수고본을 만들었다.
(4) 그 후 사주당이 72세가 되던 해인 1810년에, 사주당이 여기에 다시 스스로 언해한 언해문 및 부설과 후기(後記)를 쓰고 큰딸과 작은딸이 언문 발문을 덧붙여서 책을 한번 더 엮었다.
(5)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서에서 역주한 『태교신기/태교신기언해』는 사주당이 처음 유희를 임신했을 무렵인 30대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60대에 한 번, 70대에 한 번씩 최소 총 세 번을 수정 확대한 문헌이고, 남편 유한규가 첫 글의 제목을 정해 주었으며 여기에 아들 유희가 음의와 주석 및 언해를 더했고, 사주당이 각각 언해한 글과 유희의 한문 발문 및 딸들의 언문 발문을 더한 책으로, 아마 조선 시대를 통틀어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한 가족 문집의 성격을 띤 유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6) 그에 더하여 사주당 동시대의 유학자인 신작의 서문 및 묘지명과 구한말의 국학자 정인보의 서략, 안동 권문의 권상규, 권두선 및 유희의 후손인 유근영, 이사주당의 먼 권속인 이충호 등의 발문이 포함된 것으로, 조선시대 여성이 쓴 것으로는 보기 드물게 연속성과 연계성을 가진 책이라 할 수 있다.
(7) 이 책의 존재는 이 책이 만들어지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이미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이를 구해서 보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결과로 1908년에 『기호흥학회월보』에 게재되었고, 1938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책이 출간되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고 소개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은 사실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기존의 많은 번역서가 대부분 사주당이 처음 작성한 원문만을 번역하고 있다든지, 번역의 원칙 같은 것이 분명하지 않아서 번역자들마다 동일한 원문에 대한 번역이 들쭉날쭉 하다든지, 번역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든지 하는 점들이 그것이다.

3. 본 역주서의 의의
그동안 많은 주해서와 해설서가 있었음에도, 처음 원본이 지어진 후 250년 만에 다시 이 책을 번역하고 주석한 책을 새로 더하는 까닭은 사주당의 글에 달아 둔 유희의 주석이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것이어서 이 자체가 또 다른 주석이 덧붙어야 하는 것이고, 이 책이 여러 차례 깁고 조정되면서 덧붙은 다양한 주석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언해된 두 가지 수고본(존경각본과 유기선 소장본)의 글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태교신기〉를 다루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이사주당의 이야기와 그 아들 유희의 주석 간의 연계성을 강조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본 역주서는 바로 이 지점에 초점을 두고 편역되었다. 특히 사주당의 글에 대한 유희의 주석을 완역하고 이에 대해 각 장절(章節)마다 〈해설〉을 덧붙이고 자세한 설명을 보충해 두었다.

목차

해제 _김양진

역주편01 胎敎新記 單

I. 〈胎敎新記 序〉 - 申綽
Ⅱ. 〈胎敎新記音義序略〉 - 鄭寅普
Ⅲ. 〈胎敎新記章句大全〉 - 李師朱堂 著/柳僖 註
1. 第一章 ‘敎[교] ’자에 대해 말함
2. 第二章 ‘胎[태] ’자에 대해 말함
3. 第三章 ‘태’와 ‘교’를 갖추어 말함
4. 第四章 태교의 방법
5. 第五章 태교에 대한 잡론
6. 第六章 태교를 행하지 않는 손해에 대해 말함
7. 第七章 사람들이 귀신에게 아첨하고 꺼리는 일에 구애받는 것을 경계함으로써 태에 이익이 있게 함
8. 第八章 잡다하게 인용해서 태교의 이치를 증명하고 제2장의 뜻을 거듭 밝힘
9. 第九章 실제의 좋은 글 한 편을 들어 옛 사람이 이미 행한 일을 인용함
10. 第十章 태교의 근본을 미루어 말함
Ⅳ. 〈附錄〉
1. 墓誌銘 並序 - 申綽
2. 跋1-儆(柳僖)
3. 跋2-長女
4. 跋3-小女
5. 跋4-權相圭
6. 跋5-李忠鎬
7. 跋6-權斗植
8. 跋7-玄孫 近永(柳近永)
Ⅴ. 〈胎敎新記章句諺解〉 - 柳僖
1. 제일장
2. 제이장
3. 제삼장
4. 제사장
5. 제오장
6. 제육장
7. 제칠장
8. 제팔장
9. 제구장
10. 제십장

역주편02 〈교신긔언〉 - 희현당(李師朱堂)

Ⅰ. 잡셜부 胎敎新記 單
1. 제일장
2. 제이장
3. 제삼장
4. 제사장
5. 제오장
6. 제육장
7. 제칠장
8. 제팔장
9. 제구장
10. 제십장
Ⅱ. 부셜
1. 〈극리긔셩졍귀신인심도심디결〉
2. 〈긔삼주셜〉
3. 〈역셜〉
4. 〈결사〉

부록1: 〈논문〉: 18세기의 태교인문학과 『태교신기(胎敎新記)』 / 김양진
부록2: 『태교신기』 원문과 주석 원문 인용서목의 서지 및 인용 내용
부록3: 주요 인물 사전

원문1: 태교신기 단(1801/1938)
원문2: (존경각본) 태교신기언해(1801/1938)
원문3: (유기선 소장본) 태교신기언해(1810)

책 소개

사주당 이씨가 쓰고 그의 아들 유희가 언해한 이래로 사주당의 딸들은 물론이고 후손들, 전국의 유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쓴 서문, 발문, 비명(碑銘) 그리고 이본(異本) 등으로 확장되고 변주되며 이어져 온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서’ 태교신기 및 태교신기언해의 역주서이자 연구서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역주가 진행되었으나 단편적이고 부분적이었던 데 비하여 원본과 언해본을 비롯하여 관련된 문헌 전체를 종합적으로 주해하였다. 이사주당의 〈태교신기〉는 태교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단행본일 뿐 아니라, 한 집안에서 대대로 보존하며 실용하였고, 동시대 및 후세의 유학자들이 추앙하면서 그 내용을 본받아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단행본을 넘어 하나의 문화사를 이루는 책이다. 이사주당의 〈태교신기〉와 그의 아들 유희의 〈태교신기언해〉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의 가치를 정립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바른 성정, 건강한 신체와 바람직한 기질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조선 사람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띤다.

저자 및 역자 소개

▶ 저자 이사주당:

李師朱堂(1739~1821)
청주 출생. 본명 미상. 당호는 희현당(希賢堂), 사주당(師朱堂). 시집가기 전부터 유학에 조예가 깊어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시집간 뒤에도 남편인 유한규와 경전(經典)을 토론하고, 시를 주고받으며 학문 활동을 계속하였다. 최초의 태교서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지어 아들 유희에게 전했고 유희가 여기에 음의/주석/언해를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태교신기 단(胎敎新記單)』으로 출간되어 지금에 전하고 있다.

▶ 저자 유희:

柳僖(1773~1837)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경(儆). 호는 서파(西陂)·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이사주당(李師朱堂)의 아들. 일찍이 경학에 잠심하여 성리학을 주로 하고,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본으로 삼아 경서의 주석에 전념하였다. 유저(遺著)로 방대한 『문통(文通)』 100권이 초고로 전해 왔고, 그중 44책 69권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따로 전하는 『시물명고』·『물명유고』·『언문지(諺文志)』 등은 국어학사의 중요한 자료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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